마벨 실적과 구글 122억 달러 워런트 — 커스텀 ASIC은 칩 장사가 아니다

한 줄 요약

  • 마벨의 분기 매출 79%가 데이터센터에서 나왔다. 통신 반도체 회사라는 정체성이 사실상 끝났다.
  • 그런데 이번 분기의 진짜 사건은 실적이 아니라 일주일 전 구글에 준 워런트다.
  • 칩을 살수록 고객이 공급사 주식을 살 권리가 커지는 구조 — 커스텀 ASIC이 부품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계약 형태가 그대로 보여준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마벨은 8월 27일 2027 회계연도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27억 3,9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며 분기 최대를 기록했다.

구성이 눈에 띈다. 데이터센터 부문이 21억 7,200만 달러로 46% 증가하며 전체 매출의 약 79%를 차지했다. 통신·기타 부문은 5억 6,780만 달러로 10% 늘었다. 두 부문의 성장률 차이가 네 배가 넘는다.

수익성은 비GAAP 기준 총이익률 58.9%(GAAP 53.1%), 비GAAP 희석 주당순이익 0.94달러였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6억 550만 달러였다. 3분기 가이던스는 매출 31억 5,000만 달러(±5%), 비GAAP EPS 1.10달러(±0.05달러)로 제시됐다. 매트 머피 CEO는 AI 관련 수주가 대단히 견조하며 회계연도 하반기부터 커스텀 사업이 크게 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벨 IR 보도자료)

그리고 실적 발표 여드레 전인 8월 19일, 마벨은 구글에 자사 주식 5,897만 주를 주당 206.58달러에 살 수 있는 워런트를 부여했다고 공시했다. 전량 행사하면 약 122억 달러 규모다. 다만 한꺼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글의 칩 구매 실적 목표 달성에 연동된다. 외신은 전량 행사 시 구글이 마벨의 5대 주주가 되며, 조건을 모두 채울 경우 2033 회계연도까지 약 1,200억 달러 규모의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Reuters/Yahoo Finance 보도)

마벨이 구글에 커스텀 AI 칩을 공급하고, 구글은 구매 실적에 연동해 마벨 주식 5897만 주를 주당 206.58달러에 살 권리를 받는 구조도
거래 대금과 별개로, 구매량 자체가 지분 권리의 크기를 정한다. 공급 계약과 자본 구조가 한 덩어리로 묶인 형태다.

용어

워런트(warrant)

정해진 가격에 미래에 그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여기서는 행사가가 주당 206.58달러로 고정돼 있어, 마벨 주가가 그보다 오를수록 권리의 가치가 커진다.

커스텀 ASIC

특정 고객의 용도에 맞춰 처음부터 설계하는 전용 반도체. 범용 GPU와 달리 고객의 요구사항이 설계 단계부터 깊이 들어가고, 개발에 수년이 걸린다.

SerDes · 옵티컬 DSP

칩과 칩, 랙과 랙 사이에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실어 나르는 연결 반도체. SerDes는 전기 신호를 직렬·병렬로 바꿔 고속 전송을 담당하고, 옵티컬 DSP는 광신호를 처리한다. 마벨 데이터센터 매출의 또 다른 축이다.

밸류체인에서 이게 뭘 뜻하나

1. 워런트는 할인이 아니라 자물쇠다

고객이 공급사에 값을 깎아달라고 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이번 건은 다르다. 구글은 단가를 깎는 대신 마벨이 잘됐을 때의 상승분을 나눠 갖는 쪽을 택했다.

왜 그럴까. 커스텀 ASIC은 한 번 사고 끝나는 부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계에만 수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아키텍처 요구사항이 공급사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중간에 공급사를 갈아치우는 비용이 사실상 감당 불가에 가깝다. 그렇다면 고객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가격이 아니라 공급사가 흔들리거나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분 권리는 그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다.

반대로 마벨 입장에서는, 단가를 지키면서 장기 물량을 확보한 셈이다. 양쪽 다 명분이 있는 거래이고, 그래서 이런 형태가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2. 마벨은 이제 통신 회사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79%라는 숫자는 사업 비중을 넘어 회사의 성격을 바꾼다. 통신 반도체는 통신사 설비 투자 사이클을 따라 움직이는 사업이었다. 지금 마벨의 실적을 좌우하는 건 하이퍼스케일러의 AI 설비 투자다. 완전히 다른 사이클이고, 다른 리스크다.

실제로 통신·기타 부문은 연간으로는 늘었지만 전 분기 대비로는 뒷걸음쳤다. 성장이 한쪽에서만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3. 그런데 이 구조에는 대가가 있다

여기가 이 뉴스에서 가장 덜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커스텀 ASIC 사업의 자산은 고객의 신뢰다. 고객은 자기 칩 설계의 핵심을 공급사에 맡긴다.

그런데 그 공급사의 대주주 자리에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하이퍼스케일러가 앉게 된다면 어떨까. 커스텀 실리콘 시장의 고객은 몇 곳 되지 않고, 그들은 서로 클라우드 시장에서 정면으로 경쟁한다. 마벨이 구글과 자본으로 묶일수록, 다른 고객사가 마벨에 설계를 맡길 때 한 번 더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동시에 마벨 쪽에서는 고객 편중이 커진다. 한 고객이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는 그 고객의 투자 계획 변경 하나에 실적이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순풍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사이클이 꺾일 때 드러나는 종류의 리스크다.

4.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

  • 워런트의 구체적 마일스톤. 어떤 구매 규모에서 얼마가 확정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대 122억 달러”는 상한이지 확정 금액이 아니다.
  • 1,200억 달러라는 숫자의 성격. 조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의 시나리오이지 계약된 수주 잔고가 아니다.
  • 희석 효과. 5,897만 주가 실제로 발행될 경우 기존 주주 지분이 얼마나 희석되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5. 한국 밸류체인에는 무슨 뜻인가

커스텀 ASIC이 커지면 범용 GPU의 몫이 줄어드는 것은 맞다. 다만 메모리 쪽 그림은 조금 다르다.

커스텀 AI 칩도 HBM을 쓴다. 즉 커스텀 실리콘의 확대는 HBM 수요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HBM을 사가는 주체가 다변화되는 일에 가깝다. 엔비디아 한 곳에 쏠려 있던 수요가 여러 갈래로 나뉘면, 메모리사 입장에서는 협상 상대가 늘어나는 셈이다.

다만 단서를 달아야 한다. 커스텀 칩은 용도가 좁게 정해져 있어 최상위 사양의 HBM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량이 늘어나는 것과 평균 판매단가가 유지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이 구분은 앞으로 커스텀 실리콘 뉴스를 볼 때마다 따로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면책 고지
이 글은 AI 인프라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의 매수 또는 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수치는 발행 시점의 공개 자료를 근거로 하며, 전망성 정보는 이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전체 고지는 면책 및 투자 유의사항을 참고하세요.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