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현물가가 계약가의 5배인 이유: 캐파는 이미 팔렸다

TL;DR

  • 같은 36GB HBM3E 모듈이 장기계약으로는 50만에서 70만원, 현물로는 약 287만원이다. 4배에서 5배 차이다.
  • 이 격차는 HBM이 비싸졌다는 뜻이 아니라 현물 시장이 잔여 물량 시장으로 쪼그라들었다는 뜻이다.
  • 삼성전자 메모리는 2031년까지 생산능력의 약 70%를 이미 장기계약 물량으로 배정했다.
  • 그리고 HBM4는 수율이 아직 HBM3E보다 낮아 모듈당 D램을 더 먹는다. 세대 교체가 부족을 더 깊게 만든다.

무슨 일이 있었나

36GB HBM3E 모듈의 현물 가격이 2,100달러, 약 287만원까지 올랐다. 같은 제품의 장기공급계약 가격은 50만에서 70만원 선이다. 4배에서 5배 격차다.

이 정도 격차는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흔히 짐작하는 것과 다르다.

현물 시장이 사라지는 중이다

보통 현물가가 뛰면 물건이 모자란다고 읽는다. 여기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팔 수 있는 물량 자체가 미리 다 팔려버렸다.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은 2031년까지 생산능력의 약 70%를 장기계약 물량으로 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고객사에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들어간다. 5년 뒤 나올 물건까지 지금 주인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현물 시장에 남는 것은 그 바깥의 얇은 물량뿐이다. 여기서 값이 5배가 되는 것은 수요가 5배로 늘어서가 아니라 공급 쪽 분모가 작아져서다. 소수의 물량을 두고 계약을 못 잡은 수요가 붙으면 값은 얼마든 올라간다.

그래서 이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현물가 287만원은 메모리 회사가 실제로 받는 평균 단가가 아니다. 매출의 대부분은 50만에서 70만원짜리 계약 물량에서 나온다. 지난 분기 실적을 읽을 때도 같은 구분이 필요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생산능력의 약 70%가 2031년까지 장기계약에 배정되어 남은 물량만 현물로 거래된다. 36GB HBM3E 모듈은 장기계약 50만에서 70만원, 현물 약 287만원으로 4~5배 차이가 난다.
현물가는 시장 전체의 값이 아니라 계약 바깥에 남은 자리의 값이다. 그 자리가 좁아질수록 숫자는 커진다.

1년 계약이 사라진 이유

고객사 입장에서 장기계약은 가격 변동 위험을 없애는 장치다. 지금처럼 값이 계속 오르는 국면에서는 미리 묶어둔 쪽이 이긴다. 그래서 수년치를 한꺼번에 잡는 계약으로 몰린다.

공급사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메모리는 사이클 산업이라 값이 꺾이는 국면이 반드시 온다. 그때 장기계약은 방어선이 된다. 지금 조건으로 5년을 묶으면 하강기의 손실을 미리 막는 셈이다.

양쪽 다 합리적인 선택인데,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값을 발견하는 기능이 약해진다. 현물가가 계약가의 5배라는 것은 두 값이 더 이상 같은 시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신호다.

세대 교체가 부족을 키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얹힌다. HBM4는 16단까지 쌓는다. 그런데 아직 양산 초기라 수율이 HBM3E보다 낮다.

수율이 낮다는 것은 쓸 수 있는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D램이 더 많다는 뜻이다. 같은 웨이퍼로 만들 수 있는 모듈 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HBM4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범용 D램 여력을 더 깎는다. 세대가 올라가면 효율이 좋아질 것 같지만, 초기에는 반대로 움직인다.

가격에도 이미 반영되고 있다. 16단 HBM4 모듈의 현물가는 약 3,500달러, 480만원 수준으로 형성될 것으로 분석된다.

수출 통계에도 같은 그림이 남았다. 5월에서 7월 사이 D램 수출 물량은 13.2% 줄었는데 단가는 16.76달러에서 22.90달러로 36.6% 올랐다. 적게 팔고 비싸게 받는 국면이다.

공급사가 지금 검토하는 것

구조적으로 풀 방법은 캐파를 늘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새 팹은 몇 년이 걸린다. 그래서 지금 검토되는 것은 재배치다.

삼성전자는 평택 캠퍼스의 유일한 파운드리 라인인 S5를 이르면 내년에 메모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일본 기업과의 합작 공장 설립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라인을 메모리로 되돌린다는 것은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파운드리는 삼성이 오래 공들여온 사업이고, 라인을 전환하면 되돌리는 데 다시 시간과 돈이 든다. 그 선택을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메모리 쪽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이 다음에 볼 것

  • 현물가와 계약가 중 어느 쪽을 인용하는 기사인지. 같은 제품에 5배 차이가 나므로, 어느 값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 장기계약 갱신 조건: 새로 맺는 계약의 값이 기존보다 얼마나 오르는지. 실제 실적에 반영되는 것은 이쪽이다.
  • HBM4 수율 개선 속도: 이게 빨라지면 범용 D램 압박도 같이 풀린다. 공개되지 않으니 출하량으로 역산해야 한다.
  • S5 전환 여부: 검토가 결정으로 바뀌는지. 바뀌면 파운드리 쪽 계획도 같이 조정된다는 뜻이다.

이 글에 나온 말

현물가와 장기공급계약(LTA) · 현물가는 필요할 때 그때그때 사는 값이라 수급에 따라 크게 출렁이고, 장기공급계약은 수년치 물량을 미리 정해진 값에 묶는 계약이다.

수율 · 만든 것 중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제품의 비율. 낮으면 같은 재료로 나오는 완제품이 줄어든다.

HBM4 · HBM 규격의 최신 세대. 최대 16단까지 쌓는다.

파운드리 · 남의 설계를 받아 칩만 만들어주는 사업. 메모리와는 다른 라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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